이종무장군, 대마도 정벌
이종무장군, 대마도 정벌
  • 천홍석 기자
  • 승인 2018.08.17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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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 물리쳐 대승
이종무 장군
이종무 장군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 연안에서 활동한 일본인의 해적집단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여말선초 약 70년간 우리 나라 연안 각지에 침입하였다. 특히 고려 말의 약 40년간은 왜구가 창궐해 피해가 극심하였다.

대마도 정벌을 내세웠던 세종의 의견이,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된 뒤, 왜구를 막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논의하였다.

하지만 신하들의 말을 듣고 있던 태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긴 말 할 것 없다. 대마도 정벌을 준비하라.”

대마도는 지금의 일본 쓰시마 섬. 쓰시마 섬은 왜구의 근거지였다.

태종이 이어서 말했다.
황해도 해주를 공격한 왜선들이 아직 대마도로 돌아오기 전이니, 지금 대마도는 수비가 허술할 것이다. 이 틈을 타서 쳐들어가는 것이 옳다. 대마도를 정벌하여 왜구들의 가족을 인질로 붙잡아 오면, 가족을 찾으러 왜구들이 올 것이다. 그때 그들을 한꺼번에 전멸토록 하라.”

대마도정벌 대승
대마도정벌 대승

태종은 이종무를 대마도 정벌군의 총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대마도 정벌의 총대장으로 임명된 이종무는, 어려서부터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였다. 태조 이성계 시절에는 왜구가 옹진성을 공격했을 때, 죽을 각오로 이를 막아 냈었지요. 그리고 태종이 왕이 되는 데 큰 도움을 주어 태종의 신임을 받았다.

드디어 음력 619일에 이종무 장군은 병선 227척과 군사 17285명을 거느리고, 65일 분의 식량을 준비하여 거제도를 떠났다. 정벌군은 단 하루 만에 대마도에 도착했다.

이종무 장군은 대마도의 우두머리에게 항복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에 이종무 장군이 크게 소리쳤다.

조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왜구들에게 보여 주어라. 모두 총 공격하라!”

조선 수군은 주요 길목을 포위하고, 샅샅이 수색하는 봉쇄 작전을 폈다. 순식간에 크고 작은 왜선 129척을 찾아내어, 이용 가치가 있는 20여 척만 남기고는 모두 불태웠다.

그리고 왜구의 집 1,939채를 불태우고, 왜구 114명을 죽인 뒤, 21명을 포로로 잡았다.

또 대마도에 붙잡혀 있던 중국인 131명을 구출했다. 그 뒤에도 집 68채와 배 15척을 불태우고, 도적 9명을 벤 후, 중국인 15명과 조선인 8명을 구출했다.

대마도정벌
대마도정벌

정벌군은 몇 번의 전투를 더 벌인 뒤, 73일에 승리의 소식을 안고 거대마도 정벌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세종의 마음은 하늘로 올라갈 듯 기뻤어요. 대마도 정벌은 세종에게 처음으로 승리를 맛보게 한 전투이자, 전쟁 경험을 쌓게 해 준 중요한 전투였다. 이후 세종이 압록강 지역의 여진족 정벌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도 대마도 정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태종의 명령으로 진행된 것이지만, 세종은 대마도 정벌을 통하여, 군사권을 행사하는 방법과, 전쟁에서 승리하는 전략을 많이배웠다. 게다가 장군들을 다스리는 통솔력까지,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배울 수 있었다.

대마도를 정벌한 다음에도 왜구들은 노략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식량이 부족하여 그렇다는 것을 안 세종은, 1426년에 3개의 항구를 개항하여 그들이 조선에 와서, 식량과 생필품을 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종무 장군 묘
이종무 장군 묘

문화재 지정 :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25호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79번

이종무 장군
이종무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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