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사태, 노동자들의 절규

2013-01-20     용인종합뉴스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공장 앞 송전탑.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9도, 최고기온은 영하 2도였다.
이런 날씨에 3명의 노동자가 30미터 철탑에 올라가 57일째 고공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한상균(51세) 전 지부장과 문기주(53세) 정비지회장, 복기성(36세) 비정규직 수석부회장. 이들은 지난해 11월 20일 철탑을 올랐다. 이들이 백척간두 벼랑 끝에서 요구하는 것은 쌍용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이다.

10일 오후, 쌍용차와 기업노조가 무급휴직자 455명 전원에 대한 복직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09년 8월 6일, 파업이 끝난 후 3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취해진 조치이다.
사실 이들 무급휴직자들은 이미 파업 1년 후인 2010년 모두 복직했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회사 측은 파업 당시 노조와 합의한 합의서의 내용을 그동안 단 한 줄도 지키지 않았다.
더불어 159명의 해고자와 1,904명의 희망퇴직자 문제,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등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무급휴직자 전원복직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이는 “국정조사를 피하려는 꼼수”라고 평했다.
사실 무급휴직자들은 지금까지 복직소송을 진행 중이었고, 회사는 이에 변호사를 대고 대응 중이었다.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해결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자 사측이 쌍용차 문제가 해결된 듯 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물 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무급휴직자 복직은 쌍용차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그 첫걸음을 뗀 것일 뿐이다.

철탑에 오른 세 사람이 딛고 선 것은 여섯 장의 합판이다. 합판 위에 작은 천막 하나를 쳤고 침낭과 주머니 난로, 뜨거운 물을 넣을 수 있는 이불로 이 겨울의 혹한을 견디고 있다.
철탑 앞 뻥 뚫린 들판에서는 평택항과 서해의 칼바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어 닥친다.
그들이 철탑에 올라간 50여 일 동안 눈과 비, 혹한이 매섭게 몰아쳤고 겨우 3~4일쯤 날씨가 좋았다고 했다.
눈비가 내리면 그들이 딛고 선 합판이 들뜨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천막이 날아갈 모양새여서 위험이 더욱 가중된다. 철탑에 오른 세 사람은 그동안 노조원들이 걱정할까 그런지 별 말이 없었는데, 요즘은 부쩍 춥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하루 두 끼의 식사가 올라가지만, 좁은 공간에 갇히다시피 한 세 사람은 많이 먹지를 못한다. 노조는 그들의 건강을 염려해 결국 11일 의료진을 올려 보냈다. 진찰을 마치고 내려온 의료진은 그들이 현재 심한 동상을 겪고 있다고 했다.

철탑 아래에는 경찰들과 노조원이 함께 머물고 있다.
경찰 1개의 중대가 상주하고 있고, 또 세 동의 노조의 천막에서는 12명의 노조원이 상주하고 있다. 아래 천막에는 그나마 연탄난로가 한기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이 참혹한 겨울, 마음의 체감온도는 위에나 아래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이 그곳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운 재정총무실장은 지난해 9월 진행된 청문회 이야기를 꺼낸다 “청문회를 통해 쌍용차의 회계조작, 부당 정리해고가 모두 드러났습니다. 불법이 드러났으면 그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냥 청문회로 끝나버렸죠.” 정치권은 청문회만 하고 말았고 그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고대했던 노동자들의 마음에는 실망감만 깊어졌다. 이에 쌍용차노조 김정우 지부장이 단식에 들어가고, 쌍용차 노조원들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집단노숙과 단식을 하면서 국정조사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지부장의 41일 단식과 노조원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해결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쌍용차 구조조정의 발단이 회사의 경영위기 부풀리기와 정부의 부실매각에 있음이 뻔히 드러났으나 누구 하나 나서서 해결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에 고공농성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올라갔겠습니까?” 김정운 실장이 반문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의 실마리나마 찾을 수 있다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함이 그들을 송전탑으로 올라가게 했던 셈이다.
그들이 저 높은 곳에서 목숨을 걸고서 요구하는 것은 쌍용차 사태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정당한 처분이다. 즉 국정조사 실시,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 불법 회계조작으로 부실을 부풀린 경영진과 살인진압으로 국가폭력을 행사한 정부 측 책임자에 대한 처벌, 더불어 해고로 인해 죽어간 23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명예회복이다. 그러나 사태 후 4년이 지나도록 사회의 정당한 처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선 전 두 차례 국정조사를 약속한 바 있으나, 현재는 쌍용차 회생에 오히려 부담을 준다는 둥 딴소리를 하고 있다.

김 실장은 스물여섯 살에 쌍용차에 입사해 17년 동안 일했다.
노조에서 교육선전실장을 맡았던 그는 파업이 끝난 2009년 8월 6일,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 길로 경찰서로 끌려갔다. 이후 1년 동안 구속 상태였고 집행유예를 받았다.
그는 “이렇게까지 올 줄 몰랐다”고 소회를 전한다. 그리고 이젠 그만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한다. “가족에게 미안하죠. 따지면 3년 넘게 집에를 못 들어갔습니다. 저도 힘 안 든다고 다니지만 어떻게 힘이 안 들겠습니까?” 여전히 싸우고 있는 노조원들의 가족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따라주는 쪽이라고 했다. “이해해주는 사람 거의 없죠. 당장 그만두고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하지만 너무 억울해 그만 둘 수가 없어요.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이 져야 했고 죽어간 분들은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술 없이 살 수 없는 동료들, 골방에 처박혀 사는 동료들이 있어요. 그들을 끄집어내야죠. 끄집어내 함께 살아야 합니다.”

쌍용차 사태 이후 희망퇴직을 한 사람이 1,904명이다.
김 실장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이들이 현재 가장 힘들어 하고 있다고 전했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사실은 강압적 해고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냥 해고될래, 위로금 몇 푼 줄 테니 희망퇴직 할래? 하는 질문에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람들이죠. 그들은 많은 경우 9개월 치 월급을 받고 회사를 나갔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서 살아남을 길을 찾지도 못하고 또 노조도 찾아오지 못하고 있어요. 사실상 기댈 언덕이 없이 고립된 것이죠.” 희망퇴직자들은 스스로 싸움을 포기하고 퇴직을 신청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노조와 함께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회에 그들을 위한 일자리가 버젓이 마련돼 있는 것도 아니다. “희망퇴직자들이 더 많이 죽고 더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김 실장의 말이다.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청구 430억?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에 현재까지 청구된 손해배상청구소송 총액은 무려 430억 8천만 원에 달한다. 이는 회사 측과 정부의 피해보상액수, 보험사의 청구금액이 포함된 액수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해고노동자들의 퇴직금이 가압류되어 있기도 하다.
430억이라, 한 달 월급 이삼백 받는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가진 것이라고는 집 한 채 달랑 있을 뿐인 대부분인 노동자들에게 그 돈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김 실장은 “신종 노동탄압”이라고 평했다. “노조원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죠. 만약 실제로 압류가 행사된다면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의 말이 서늘하다. ‘158억 원의 손해배상 철회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한진중공업 노조원 최강서 씨가 떠올랐다.

현행법상에선 근로조건을 두고 노조가 파업을 하면 합법이지만, 정리해고 문제를 가지고 파업을 하면 불법이다. 따라서 정리해고를 화두로 한 불법적인 파업에 대해 그 피해를 노동자에게 묻겠다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는가 싶다. 이는 헌법정신과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법이라고 들이대지만 법이 아니라 사측에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되는 만능의 칼자루를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파업 당시 노동자들을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귀족노조라는 오해와 편견이었다.
쌍용차 노동자들 연봉 몇 천만 원 받는다는 소리는 실제 상황과 세부적인 모든 현실을 무시한 채로 그들을 배부른 소리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치부하게 했다.
두 자녀를 둔 김 실장이 쌍용차에 근무할 당시 1년에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돈은 4천이 조금 넘었다. 주말도 없이 긴 노동시간을 감내한 결과다. 게다가 이런 수준의 임금은 인근 평택공단의 기업들 급여와 비교해도 낮은 편이다.
한 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4인 가구가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소득은 월 평균 301만 원이라고 했다.
1년이면 기본 3,600만 원의 수입은 있어야 그나마 현상유지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연봉 4천만원을 받는 노동자를 두고 귀족이라 했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그 정도의 수입으로 귀족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결국 귀족노조라는 비판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옭아매고 국민들의 시선을 왜곡하려는 기득권층의 꼼수일 뿐이다.

대선이 끝난 후 분위기는 어떤지 물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최악의 결과가 나온 것이지만 정치권을 믿었으면 이 싸움 지금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거예요.”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니 실망도 덜할까, 그걸 위안 삼으려는 마음이 참으로 씁쓸했다.

쌍용차 사태가 일어난 이후 4년이 지났다.
2,646명의 노동자들이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고 긴 시간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철탑 위의 세 사람은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해고자복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은 내려오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쌍용차 사태를 두고 기획부도라고 한다. 이는 노동자들의 해고가 기획 되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누가 누구의 삶과 죽음을 기획하는가? 쌍용차 사태는 어물정하게 덮고 지나갈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자 역사적 화두이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있는 게 맞다 면 당장 철탑 위 노동자들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