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반도체, 불산 누출 5명 사상
사고 25시간 뒤 늑장 신고
작업자 5명이 숨진 경북 구미 불산 누출사고가 일어난 지 4개월 만이다.
삼성전자는 사고 발생 사실을 신고하지 않다가 작업자가 숨지고 난 뒤에야 누출 발견 25시간 만에 당국에 신고해, 늑장신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28일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 삼성전자 화성 공장 11라인에서, 불산 저장 탱크 배관의 개스킷 교체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 박모(35)씨가 불산 가스에 노출돼 숨지고, 함께 작업을 하던 4명이 경상을 입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전날인 27일 오후 1시 31분쯤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세척용으로 쓰이는 불산을 공급하는 500L들이 저장 탱크 밸브에서 수용액(물 50%, 불산 50%) 상태의 불산 누출을 확인했다.
이 저장 탱크는 생산 라인 외부에 별도로 설치돼 배관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
삼성전자는 불산 공급업체인 STI 서비스 직원 5명을 동원, 27일 밤 11시 38분부터 수리 작업에 들어가 28일 오전 4시 46분 낡은 밸브 개스킷 교환을 완료하고 중화와 세척 등의 추가 작업을 오전 5시 40분에 마쳤다.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27일 오전부터 탱크의 밸브에서 불산이 방울방울 조금씩 새어 나왔으며, 28일 오전 3시 45분쯤 밸브 교체 작업을 완료한 뒤에 불산을 다시 충전하는 과정에서 2차로 누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수리 작업을 맡은 STI 직원 가운데 박씨가 오전 7시 30분쯤 목과 가슴에 통증과 물집 등을 호소해 인근의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으로 후송됐다.
박씨는 이곳에서 어지럼 증세를 보이다가 쓰러져 오전 10시쯤 다시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후송 됐으나, 오후 1시 30분쯤 숨졌다. 나머지 4명의 직원은 무거운 증세를 보이지 않아 일단 퇴원했다.
경찰은 유출된 불산액이 기화하면서 작업자들이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작업 현장의 CCTV를 확인한 결과 작업자들은 방제복과 가스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게 돼 있지만 박씨는 마스크만 착용했을 뿐 방제복을 입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측은 2~3L, 경기도는 10L가량의 불산이 누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소방서 등 당국에 불산 누출 사실을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사망자가 발생하자 누출 발견 하루가 지난 28일 오후 2시 42분쯤 경기도와 경찰에 사고 발생 사실을 통보했다. 이 때문에 경기도, 한강유역환경청 등 관련 당국은 유출 사고 발생 26시간 만인 28일 오후 3시 30분 이후에야 현장을 방문해 조사를 시작했다.
화성소방서도 오후 4시 30분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의 통보를 받고, 관할 119 안전센터 소방차 1대와 화재조사팀을 현장에 투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구미 불산 누출 사고는 불산 원액이 터지면서 발생했지만, 화성 공장은 불산 희석 액이 일부 누수된 것이라 통상적인 유지 보수 활동으로 판단해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행 ‘유해 화학물질 관리법’ 제40조는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사고로 사람의 건강 또는 환경에 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관할 지방자치단체, 지방환경관서, 국가경찰관서, 소방관서 또는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삼성전자 측은 적어도 불산이 2차로 누출된 28일 새벽 3시 45분 무렵에는 관계 당국에 이 같은 사실을 즉시 신고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사고가 난 곳이 외부가 아니라 불산 전용 저장 공간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처리 가능한 단순 유출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사고로 누출된 불산은 극히 미량이며 유출 시 폐수 처리장으로 자동 이송되기 때문에 바깥으로 유출됐을 가능성은 없다”며 “중화 및 세척 작업이 완료됐고, 누출 부분은 수리가 됐기 때문에 더 이상의 위험은 없다”고 주장했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6시 50분쯤 사고 현장에서 대기 중 불산 농도를 6회에 걸쳐 측정했다. 사고가 일어난 밸브 지점으로부터 3㎝ 떨어진 대기에서는 8ppm(100만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 10㎝ 이격 지점에서는 1~2ppm이 검출됐지만 1m 이격 지점에서는 불산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환경부는 전했다.
현재 불산의 작업장 내 대기 중 환경 기준은 0.5ppm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작업장 내에서 비교적 소규모의 불산이 누출돼 외부로는 불산이 확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화성 공장에서 취급하는 불산의 양은 연간 7658t(2011년 현재)에 이른다.
▶불산 이란?
불소와 수소가 결합한 맹독성 물질. 공기보다 가벼워 대기 중에서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다. 침투력도 강해 신체에 닿으면 피부나 점막에 쉽게 침투하며 혈액이나 세포 조직에 들어가면 뼈 조직이 망가지고 세포의 생리작용을 교란시켜 호흡 곤란, 심장 부정맥을 부를 수 있다.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불순물 제거와 웨이퍼 세척에 필요해 반도체 공장에서 대량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