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참사 후 안전 불감증 여전
한국인의 안전불감증 세계최고?
대형 참사 후 안전 불감증 여전
한국인의 안전불감증 세계최고?
  • 용인종합뉴스
  • 승인 2014.07.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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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을 맞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불감증이 낳은 사고에, 국가의 재난대응시스템이 제 역할을 못한 전형적인 인재(人災)다.
증축 과정에서 세월호의 복원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됐지만, 여객선사는 이를 무시했다. 안전 매뉴얼이라 할 수 있는 운항관리규정은 허위로 작성돼 해경 승인을 받았다.

 
한국해운조합은 세월호 출항 전 화물 중량, 화물 결박 상태 등을 점검·확인하지 않았다.
해경은 전대미문의 대형 사고에 우왕좌왕했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정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상황을 장악하지 못한 채 미숙함을 드러냈다.
어느 곳 하나 제대로 움직인 곳이 없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맥상을 드러내며 온 나라를 충격과 비탄에 빠뜨렸다.

그 결과 세월호 참사는 사상 최악의 해난사고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후 안전과 관련한 각종 대책이 말 그대로 쏟아졌다.
해사안전감독관을 도입하는 내용의 해사안전법 개정안과, 학교안전사고 예방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국가를 개조하는 수준으로 사회 안전망을 대폭 확충하겠다고 천명했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안전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했다.
그러나 곧이어 터진 크고 작은 사고 때마다 '안전불감증'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발생한, 고양 종합버스터미널 화재 사건은 전형적인 후진국 형 인재로 꼽혔다. 용접공사 때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고, 방화시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고양시는 불이 나기 며칠 전 터미널 전반에 걸쳐 안전점검을 했지만, '이상 없음'이었다.
형식적인 점검에 그쳤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 대가는 컸다. 사망 8명, 부상 110명 등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이틀 뒤인 5월 28일에는 전남 장성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21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이 사건은 치매노인의 방화로 촉발된 것이지만, 허술한 안전점검과 환자 관리 때문에 인명피해가 커졌다. 병원은 병실에 비치해야 할 휴대용 소화기 11개 중, 8개를 잠긴 캐비닛에 보관했다. 비상구 지정 통로는 아예 자물쇠로 잠갔다.
장성군 공무원 2명은 병원 현장 점검에서 불이 난 별관 건물 등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이상 없음'으로 점검표를 허위 작성한 사실이 적발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내려진 지침에 따른 점검마저 허술하게 한 것이다.
안전 불감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선 5월 2일 발생, 238명의 부상자를 낸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 열차 추돌 사고도 허술한 안전관리 실태를 드러냈다. 서울메트로 측은 사고 발생 한참 전 신호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열차를 운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행 열차의 경우 1분 30초가량 출발이 지연됐는데도, 이 사실을 종합관제소에 보고하지 않는 등 역시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정부 당국은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지상주의'를 외치며, 각종 대책을 쏟아내지만 문제는 대책 대다수가 현실과 동떨어진, 땜질식 처방에 그친다는 지적이 늘 뒤따랐다.
일례로 직행좌석버스 입석 금지 정책은, 수도권 버스운행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졸속·탁상행정 탓에 시행 초기부터 많은 논란을 낳았다.
버스 입석금지 조치는 직행좌석형(빨간색) 광역버스에만 적용되고, 일반좌석형(파란색) 간선버스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기도와 서울시를 오가는 일반좌석버스 상당수는 고속화도로를 운행하고 있어,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행정당국은 승객들이 고생하며 출퇴근하는 곤욕을 치르고 있었지만, 이렇듯 다른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버스 입석금지 정책은 여당 내부에서도 비난을 샀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하태경 의원과 조동원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국토교통부가 시행 전 관련 대책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간과했다" 며 "국토부는 국민에게 공식 사과하고, 입석금지 제도를 유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안전 확보에 대한 강박관념 탓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밀어붙이기식 대책은, 전국 여객선 입출항 현장에서도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월호의 과적이 문제가 되자 해경은 뒤늦게, 전국 각지의 여객선터미널에서 여객선 적재 화물량을 엄격히 제한했다.
'안개가 짙게 끼었다'며 운항을 통제하는 횟수는 세월호 참사 전에 비해 급격히 늘었다.
인천해경은 세월호 참사 후 열흘 간 시정주의보가 발효되지 않았어도, 3차례나 운항을 부분 통제했다.

해경은 그러나 섬 주민의 원성이 커지고, 지방자치단체의 규제 완화 요청이 빗발치자 어느 순간부터 단속을 다시 완화하는 쪽으로 슬그머니 돌아서는 분위기다.
섬 주민의 불편을 외면한 채, 무차별 단속을 지속할 수 없는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해경이 현실을 반영한 명확한 대책을 세우고 이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해경은 선박에 화물 고박장치가 없다고, 무조건 섬 주민의 생필품 선적량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선박 안전에 필요한 화물 고박장치를 확충하도록 강제하고, 이후 명확한 원칙에 따라 적재량 단속에 나서야 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후진국형 인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재난대응 매뉴얼에 현실성을 불어넣고 매뉴얼 운용 인력을 전문화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정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기관에 무려 3천여 개의 재난대응 매뉴얼이 있어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현장에서 활용할 수 없는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오원신 인천소방안전학교 교수연구단장은 23일 "후진국형 참사가 되풀이돼도 명확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보다는, 책임자 처벌에 몰두하다가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며 "서류로만 존재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실질적인 예방, 교육·훈련, 현장 중심의 재난대응이 될 수 있도록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운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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